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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왜 한사군 평양설만 주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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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동북공정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일부 단체 및 학계의 편향된 기술에 대한 시정 요청을 하려고 합니다. 우선은 동북공정의 논란이 되고 있는 한사군을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사군(漢四郡)은 전한의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뒤 그 자리에 세운 4개의 행정구역을 말합니다. BC 108년에는 낙랑군(樂浪郡), 임둔군(臨屯郡), 진번군(眞番郡) 3개를 설치하였고, 1년 후인 BC 107년에 현도군(玄菟郡)을 설치합니다. BC 82년 진번군과 임둔군은 각각 낙랑군과 현도군에 합쳐지고, BC 75년 현도군은 서북지역으로 축출되었습니다. 남은 낙랑군은 313년까지 유지되다가 소멸되었고요.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이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는가아닌가 입니다. 한사군의 위치에 따라 만리장성의 시작 위치도 달라지는데, 만리장성이 당시 한나라와 고조선의 경계선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병존되고 있는데, 첫 번째는 한사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설입니다. 중국의 사서인 『한서지리지』를 보면 “낙랑군 수성현(遂成縣) 갈석산은 만리장성의 기점이다”라고 되어있습니다. 한사군 평양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수성현의 ‘수(遂)’자가 수안현(遂安縣)의 ‘수’와 같기 때문에 이곳을 황해도 수안(참고로 수안은 평양보다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으로 보았고, 이곳에 낙랑군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논리를 근거로 중국은 만리장성이 한반도까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설은 한사군이 동쪽 끝인 산해관(山海關) 인근에 있었다는 설입니다. 이 설은 앞의 주장과 상이하게 다른데, 『한서지리지』에 등장하는 갈석산은 중국의 하북성(河北省) 창려현(昌黎縣)에 있는 갈석산(碣石山)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수성현은 수안현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 갈석산 부근에는 산해관이 있는데, 산해관은 현재 남아있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둘 중 하나를 지지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어느 한 쪽이 옳다고 하기에는 아직 양쪽 모두 좀 더 충분한 자료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또한 한사군 자체의 존재 유무에 대한 논란도 뜨거운 상태이기에, 지금 상황에서는 찬성 반대를 하듯 어느 한쪽만을 지지한다는 것은 편협한 사고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일부 사학계에서 한사군 평양설만 고집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과 동북아역사재단도 여기에 편향되어 있습니다. 현재 국사 교과서에서도 한사군이 한반도 안에 존재했다고 표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역사의 논란을 해결하는 가장 최우선의 방법은 꾸준한 연구를 통해 그 주장을 객관화시킬만한 증거를 찾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시도도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한쪽만을 편향한다는 것은 국민들의 역사의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 단체로서 결코 옳지 않은 태도이며, 그것 자체가 역사 왜곡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한사군 평양설을 지지하는 일부 사학계에 대해 기존 기술을 시정할 것을 주장합니다.
한사군(漢四郡)은 전한의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뒤 그 자리에 세운 4개의 행정구역을 말합니다. BC 108년에는 낙랑군(樂浪郡), 임둔군(臨屯郡), 진번군(眞番郡) 3개를 설치하였고, 1년 후인 BC 107년에 현도군(玄菟郡)을 설치합니다. BC 82년 진번군과 임둔군은 각각 낙랑군과 현도군에 합쳐지고, BC 75년 현도군은 서북지역으로 축출되었습니다. 남은 낙랑군은 313년까지 유지되다가 소멸되었고요.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이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는가아닌가 입니다. 한사군의 위치에 따라 만리장성의 시작 위치도 달라지는데, 만리장성이 당시 한나라와 고조선의 경계선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병존되고 있는데, 첫 번째는 한사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설입니다. 중국의 사서인 『한서지리지』를 보면 “낙랑군 수성현(遂成縣) 갈석산은 만리장성의 기점이다”라고 되어있습니다. 한사군 평양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수성현의 ‘수(遂)’자가 수안현(遂安縣)의 ‘수’와 같기 때문에 이곳을 황해도 수안(참고로 수안은 평양보다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으로 보았고, 이곳에 낙랑군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논리를 근거로 중국은 만리장성이 한반도까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설은 한사군이 동쪽 끝인 산해관(山海關) 인근에 있었다는 설입니다. 이 설은 앞의 주장과 상이하게 다른데, 『한서지리지』에 등장하는 갈석산은 중국의 하북성(河北省) 창려현(昌黎縣)에 있는 갈석산(碣石山)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수성현은 수안현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 갈석산 부근에는 산해관이 있는데, 산해관은 현재 남아있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둘 중 하나를 지지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어느 한 쪽이 옳다고 하기에는 아직 양쪽 모두 좀 더 충분한 자료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또한 한사군 자체의 존재 유무에 대한 논란도 뜨거운 상태이기에, 지금 상황에서는 찬성 반대를 하듯 어느 한쪽만을 지지한다는 것은 편협한 사고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일부 사학계에서 한사군 평양설만 고집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과 동북아역사재단도 여기에 편향되어 있습니다. 현재 국사 교과서에서도 한사군이 한반도 안에 존재했다고 표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역사의 논란을 해결하는 가장 최우선의 방법은 꾸준한 연구를 통해 그 주장을 객관화시킬만한 증거를 찾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시도도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한쪽만을 편향한다는 것은 국민들의 역사의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 단체로서 결코 옳지 않은 태도이며, 그것 자체가 역사 왜곡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한사군 평양설을 지지하는 일부 사학계에 대해 기존 기술을 시정할 것을 주장합니다.
댓글목록

백군님의 댓글
백군 작성일동북공정 동북공정 말만 들었었는데... 우리 사학계가 이렇게 편파적이었나요?;;;

bluestar님의 댓글의 댓글
bluestar 작성일편파적이라기 보다는... 일제 무단통치 시절 일본 사학자들의 왜곡된 역사 교육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역사를 위해서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겠죠? ^ㅡ^ㅎ

bluestar님의 댓글
bluestar 작성일편파적이라기 보다는... 일제 무단통치 시절 일본 사학자들의 왜곡된 역사 교육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역사를 위해서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겠죠? ^ㅡ^ㅎ

보라색향기님의 댓글
보라색향기 작성일국사 선생님이 이런 얘기 한 적 있었는데요~ 제가 듣기론 일제의 잔재다 뭐 이런거 관련 있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