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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동북공정의 음모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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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몇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그 중 세 가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먼저 우리의 시조국가인 고조선에 관하여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중국인이 세운 나라로 분류하는 점입니다.
고조선에는 기자조선이 있었는데, 중국의 주장은
“은(殷)· 주(周)왕조 후예들이 한반도에 건립한 지방정권으로서,
후에는 모두 주(周)와 진(秦)의 해외속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옛날 중국 사람들이 쓴 위서(魏書)를 보면,“2천년 전에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있었다.
그는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조선(朝鮮)이라고 불렀으니,
이는 요(堯)와 같은 시기였다”라고 되어있다고 전합니다.
이 단군왕검만을 인정하려 한다면 중국 측의 역사사료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봐야합니다.
“중국은 세상의 중심이고, 주변국들은 중국의 황제를 섬기는 번국(蕃國=제후국)에 불과하다”라는 이른바
중화중심사고에 의해 기술된 문서들이기 때문에 일방주의적 사료이고 칭기스칸 마저
중국인이라고 우기는 그들의 모순에 빠져듭니다.
이와 비슷하게 중국황제가 고구려 왕에게 책봉을 했고,
고구려는 매년 조공을 바쳤기 때문에 중국의 소수지방정권이 맞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봉 또한 역사에서 상대편은 모른 채 일방적으로 기술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남의 나라 왕을 장군으로 봉했고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왜는 섬나라에서 천자를 표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역을 하는 것 또한 상대 국가가 조공을 바치면 선물을 내리는 식으로 기술되었기 때문에
중화사상으로 입각된 주장은 객관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아편전쟁에 진 후 조약을 맺을 때도 “영국이 조공을 바치러 왔다”고 기록하였고,
자기들이 전쟁에 패해서 항복문서를 쓰는 것도 “영국의 오랑캐들이 우리 중국문화를 흠모해서
문화를 받겠다고 하기에 이에 잠시 허용했다.” 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자기나라만이 상국(上國)이고,
이웃나라들은 모두 속국이며 또한 오랑캐들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사군 문제를 언급할 수 있겠습니다.
한무제본기에 '겨울에 조선을 쳐서 우거왕이 항복하니 그 땅을 현도, 낙랑, 임둔, 진번군으로 삼았다.' 라며
처음 사군의 명칭이 나옵니다. 만약 이 지역이 중국측에서 주장하는 지금의 평양지역이라면
지금으로부터 한반도 북부뿐만 아니라 만주 요서. 요동 지역에 漢족의 수천년 동안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한족의 영향은 하북 지역을 끝으로 북으로 더 이상 뻗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위만조선이 요서일대로 옮겨간다면 성곽제조기술이나 비파형동검, 토기 등 역사적 증거들이 맞아 떨어집니다.
그리고 위만조선과 고조선은 별개의 국가로 보고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치면서
감히 조선정벌이란 단어를 썼다고 보면 명쾌해집니다.
또, 기록상 패전국인 위만국의 신하들은 제후가 되었는데 한나라 장수들은 승전하고서도
처벌만 받았다는 사실은 역사가 날조가 되었거나 고조선을 정발하지 못하고 패했고
그 과정에서 위만조선이 한나라에 흡수병합되었다는 사실만을 보여줍니다.
저는 우리나라 역사의 반 이상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그간 일본의 식민지침탈 동안에 왜곡 축소되어왔습니다.
우리의 앞으로의 세대에게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이어가게 하기 위해서 왜곡되어진 역사를 바로잡지는 못할망정,
지금 가진 것마저 왜곡하도록 내러려 둘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해방되었을 때 뒷정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나라 역사교과서가 잘못 되었다고 만 타성하지 말고 우리의 역사교과서가
어떤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성찰해 봐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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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ker님의 댓글
Joker 작성일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던가요. 확실히 교과서를 보면 모순토성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