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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독립전쟁! 폭풍우와 워싱턴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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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가 태어난 바로 다음날 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강풍과 혹한 속에서
얼어붙은 펜실베이니아의 델라웨어 강을 선두에서 건너는 조지 워싱턴”
미국인들은 E. 로쯔의 그림 속에 있는 워싱턴을 볼 때마다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전진하는 선조들의 모습을 발견한다고 한다.
1776년 성탄절 다음날,
기압골이 통과하면서 강한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때다. 내일 새벽에 강을 건너 기습을 하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
이 지역은 겨울에 기압골이 통과하면서 북동풍이 불 때는 싸락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경우가 많다.
밤이 깊어 갈수록 온도는 떨어지고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비에 젖은 병사들이 느끼는 추위는 훨씬 더 심해졌다.
더구나 강에 도착하고 보니 강은 깨진 얼음 덩어리들로 꽉 차 있었다.
결국 세 곳으로 나누어 강을 건너고자 했던 시민군들 중 워싱턴의 부대만이 강을 건널 수 있었다.
본래 미국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신대륙으로 건너왔던 독실한 청교도의 후예들이다.
워싱턴 역시 전투에 임할 때마다 하나님께 승리의 지혜를 얻기 위해 기도를 올렸을 만큼 독실한 신자였다고 한다.
후에 워싱턴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깜깜한 밤에 얼음이 떠내려 가는 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후속 부대와 포병부대가 새벽 3시까지 강을 건너지 못한 상태에서 워싱턴은 적은 수의 보병만을 이끌고 전진했다.
영하의 추운 새벽에 그것도 눈과 우박이 내리는 가운데의 행군이라 위험했지만
다행히도 강한 북동풍이 불어 바람을 등지고 행군하는 시민군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반대로 트렌턴의 영국군은 눈과 비바람을 정면에서 마주보아야 했으므로 시야가 악화되어 적을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천신만고 끝에 워싱턴 군이 트렌턴에 도착했을 때 폭풍우로 경계심이 풀어진 영국군은 아예 경비병 조차 세우지 않았다.
워싱턴의 미국 시민군은 전격적인 기습 공격을 시작했고, 전투는 채 한 시간이 안 돼서 끝이 났다.
워싱턴은 시민군 단 2명의 희생으로 영국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병력을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는 놀라운 쾌승을 거둔 것이다.
독립전쟁 초기에 미국 시민군은 잘 훈련된 정규 영국군의 상대가 될리 없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미국인들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날씨를 전투에 잘 활용한 지휘관의 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강풍과 혹한 속에서
얼어붙은 펜실베이니아의 델라웨어 강을 선두에서 건너는 조지 워싱턴”
미국인들은 E. 로쯔의 그림 속에 있는 워싱턴을 볼 때마다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전진하는 선조들의 모습을 발견한다고 한다.
1776년 성탄절 다음날,
기압골이 통과하면서 강한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때다. 내일 새벽에 강을 건너 기습을 하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
이 지역은 겨울에 기압골이 통과하면서 북동풍이 불 때는 싸락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경우가 많다.
밤이 깊어 갈수록 온도는 떨어지고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비에 젖은 병사들이 느끼는 추위는 훨씬 더 심해졌다.
더구나 강에 도착하고 보니 강은 깨진 얼음 덩어리들로 꽉 차 있었다.
결국 세 곳으로 나누어 강을 건너고자 했던 시민군들 중 워싱턴의 부대만이 강을 건널 수 있었다.
본래 미국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신대륙으로 건너왔던 독실한 청교도의 후예들이다.
워싱턴 역시 전투에 임할 때마다 하나님께 승리의 지혜를 얻기 위해 기도를 올렸을 만큼 독실한 신자였다고 한다.
후에 워싱턴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깜깜한 밤에 얼음이 떠내려 가는 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후속 부대와 포병부대가 새벽 3시까지 강을 건너지 못한 상태에서 워싱턴은 적은 수의 보병만을 이끌고 전진했다.
영하의 추운 새벽에 그것도 눈과 우박이 내리는 가운데의 행군이라 위험했지만
다행히도 강한 북동풍이 불어 바람을 등지고 행군하는 시민군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반대로 트렌턴의 영국군은 눈과 비바람을 정면에서 마주보아야 했으므로 시야가 악화되어 적을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천신만고 끝에 워싱턴 군이 트렌턴에 도착했을 때 폭풍우로 경계심이 풀어진 영국군은 아예 경비병 조차 세우지 않았다.
워싱턴의 미국 시민군은 전격적인 기습 공격을 시작했고, 전투는 채 한 시간이 안 돼서 끝이 났다.
워싱턴은 시민군 단 2명의 희생으로 영국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병력을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는 놀라운 쾌승을 거둔 것이다.
독립전쟁 초기에 미국 시민군은 잘 훈련된 정규 영국군의 상대가 될리 없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미국인들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날씨를 전투에 잘 활용한 지휘관의 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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