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선인들의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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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토돌이 작성일 08-08-29 20:41 조회 1,639 댓글 0본문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하는 벗이 멀리서 나를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의 학문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공자(孔子)
젊은이는 집에서는 효도하고 밖에서는 공손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성실하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와 친해야 한다.
이를 행하고 남는 힘이 있으면 학문을 한다. -공자(孔子)
군자가 먹는 데 있어 배부르기를 바라지 않고,
거처함에 있어 편안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일을 부지런히 하고 말을 삼가며,
도(道)가 있는 이에게 찾아가서 자신을 바로잡는다면 가히 학문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 -공자(孔子)
스스로 분발하지 않는 제자는 계발해주지 않고,
애태워하지 않는 제자에게는 말해주지 않는다.
한 모서리를 들어서 보여주는데 세 모서리로 응답하지 않으면 다시 일러주지 않는다. -공자(孔子)
나는 나면서부터 안 자가 아니요,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추구한 사람일 뿐이다. -공자(孔子)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행동하는 일이 있는가?
나는 이런 일이 없다.
많이 듣고서 그 좋은 것을 가려서 따르며 많이 보고서 기억해두는 것,
이것이 앎에 버금간다. -공자(孔子)
뜻을 참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대학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밝게 분변하고, 독실하게 행하여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모르겠거니와 배울진대 능하지 못함이 없어야 하며,
묻지 않으면 모르겠거니와 물을진대 알지 못함이 없어야 하며,
생각하지 않으면 모르겠거니와 생각할진대 얻지 못함이 없어야 하며,
분변하지 않으면 모르겠거니와 분변할진대 밝지 못함이 없어야 하며,
행하지 않으면 모르겠거니와 행할진대 독실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남이 한 번 해서 그것에 능하다면 자기는 백 번 할 것이며,
남이 열 번 해서 그것에 능하다면 자기는 천 번 할 것이다. -중용
학문이라는 것은 안에서 찾는 것이다.
안에서 찾지 않고 밖에서 찾는 것은 성인의 학문이 아니다. -정자(程子)
군자에게는 공부보다 더 자기를 향상시키는 방법은 없고,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는 것보다 더 자신을 지체시키는 건 없다.
또 스스로 만족하는 것보다 더 큰 잘못이 없고, 자포자기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게 없다. -정자(程子)
장인(匠人)이 물건을 만드는 건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물건을 만들어도 쓸모가 없다면 장인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문을 해서 쓸모가 없다면 학문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정자(程子)
암기 위주의 공부와 박식(博識)을 추구하는 공부는,
물건을 갖고 노는 것과 같아 본심(本心)을 잃게 만든다. -정자(程子)
배움이 크게 이롭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어서다. -장자(張子)
학문하는 것은 비유컨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모름지기 먼저 몸체를 세우고, 그 다음 속으로 들어가 벽을 만들어 견고하게 해야 한다.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집을 크게 지을 줄을 모르고 조그만 방이나 지으려 하기 때문에 일을 이루지 못한다. -주자(朱子)
산만한 마음을 수습하는 것이 공부하는 데 긴요하다. -주자(朱子)
스승과 벗에 의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주자(朱子)
공부하는 자는 모름지기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이요,
얻는 것을 계산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주자(朱子)
앎은 실천의 시작이요, 실천은 앎의 완성이다.
앎과 실천은 둘로 나눌 수 없다. -왕양명(王陽明)
근세에 아이를 가르치는 자들은 날이면 날마다 아이들에게 자구를 익히라.
다그치고 품행을 방정히 하라고 요구하지만 아이들을 예(禮)에 의거하여 지도하는 법을 모른다.
또 아이들이 총명하기를 바라지만 아이들을 착하게 키우는 법을 모른다.
그리하여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때리고 벌을 주기를 죄인 다루듯이 한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를 감옥으로 생각하여 들어가려 하지 않으며,
스승을 원수처럼 여겨 보려고 하지 않는다. -왕양명(王陽明)
학문은 깨우쳐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깨우쳐주는 것은 스스로 깨닫는 것보다는 못하다.
스스로 깨닫는 것은 일당백(一當百)의 공부가 된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리 깨우쳐주어도 잘 안된다. -왕양명(王陽明)
어디 간들 도(道) 아닌 것이 없으며, 어디 간들 공부 아닌 것이 없다. -왕양명(王陽明)
내가 젊었을 때 학문에 뜻을 두어 낮에는 쉬지 않고
밤에는 자지 않고 공부하다가 마침내 고질병을 얻어 폐인을 면하지 못하였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자신의 기력을 헤아려서 자야할 때는 자고 일어나야 할 때는 일어나며,
때와 곳에 따라 자신의 심신을 살펴서 마음을 함부로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찌 꼭 나처럼 하여 병이 나게 할 것인가. -이황(李滉)
도(道)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아니하나니, 공부하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 -서경덕(徐敬德)
초학자(初學者)의 공부란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며 어른에게 공손하고 아이에게 자애롭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일에는 힘쓰지 않고 갑자기 심오한 성리를 연구하고자 한다면
이는 사람의 일을 통해 하늘의 이치를 탐구하는 게 아니니, 필경 마음에 참되이 얻는 바가 없을 것이다.
이 점은 깊이 경계해야 한다. -조식(曺植)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 -율곡 이이(栗谷 李珥)
공부라는 것은 일상생활과 일 속에 있다.
평소에 행동을 공손히 하고 일을 공경히 하며 남을 진실되게 대하는 것,
이것이 곧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것은 이 이치를 밝히고자 해서이다. -율곡 이이(栗谷 李珥)
자신의 덕을 날마다 새롭게 하려면 모름지기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하고,
스승을 만나려면 모름지기 묻기를 좋아해야 한다. 묻기를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덕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근본이다.
날마다 새롭게 되는 공부는, 오늘 묻기를 좋아하고 내일 묻기를 좋아하여 평생토록 부지런히 노력하여
자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데 있다. -이익(李瀷)
큰 의심이 없는 자는 큰 깨달음이 없다.
의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얼버무리며 미봉하는 것보다는 자세히 물어 분변하는 게 나으며,
면전에서 아첨하며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다 밝힌 후 서로 합치점을 찾는 게 낫다. -이익(李瀷)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게 없다.
모르는 게 있으면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라도 물어야 옳다.
하인이라 할지라도 나보다 한 글자를 더 안다면 그에게 배워야 한다.
자기가 남보다 못한 것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평생 고루하고 무식한 데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박지원(朴趾源)
선비가 독서를 하면 그 은택(恩澤)이 천하에 미치고 그 공덕(公德)이 만세에까지 전해진다. -박지원(朴趾源)
학문은 천하의 공변된 것이다.
참으로 그 말이 도(道)에 어긋난다면 비록 대인 군자에게서 나온 말이라 할지라도 믿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대인 군자보다 못한 사람임에랴.
참으로 그 말이 이치에 맞다면 비록 비천한 사람이나 용렬한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라 할지라도
의당 드러내주어야 하겠거늘, 하물며 그보다 더 나은 사람임에랴.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하늘이 총명함을 주는 것은 귀천(貴賤), 상하(上下), 남북(南北)을 가리지 않으니,
타고 난 재능을 확충하여 맹렬하게 정신을 다하면 9999분(分)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나머지 1분의 공부는 이루기가 몹시 어려우니 노력해야 마땅하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가르침이 행해지지 않는 데에는 네 가지 까닭이 있다.
배움의 길은 발견했어도 제멋대로 욕심을 부려 배우는 차례를 따르지 않는 것이 그 하나요,
배움으로 들어가는 문을 찾지 못해 마음과 힘만을 헛되이 낭비하는 것이 그 둘이며,
마음이 차분히 안정되지 못해 이치를 궁구하지 못하는 것이 그 셋이며,
아직 방향도 모르는 주제에 스스로 잘 안다고 여기는 것이 그 넷이다.
가르침을 방해하는 것에도 네 가지가 있다.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노래와 여색과 잡기이다.
그 다음으로는 부귀와 영달이며, 그 다음으로는 문장과 기예(技藝)이다.
끝으로, 무리를 지어 학문을 하면서 남을 이기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행태를 들 수 있다.
이것들 때문에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이 존재하기 어렵다. -혜강 최한기(惠崗 崔漢綺)
선인들의 공부법(1) 저자: 박희병 편역
출판사: (주)창작과비평사
뜻을 같이하는 벗이 멀리서 나를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의 학문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공자(孔子)
젊은이는 집에서는 효도하고 밖에서는 공손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성실하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와 친해야 한다.
이를 행하고 남는 힘이 있으면 학문을 한다. -공자(孔子)
군자가 먹는 데 있어 배부르기를 바라지 않고,
거처함에 있어 편안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일을 부지런히 하고 말을 삼가며,
도(道)가 있는 이에게 찾아가서 자신을 바로잡는다면 가히 학문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 -공자(孔子)
스스로 분발하지 않는 제자는 계발해주지 않고,
애태워하지 않는 제자에게는 말해주지 않는다.
한 모서리를 들어서 보여주는데 세 모서리로 응답하지 않으면 다시 일러주지 않는다. -공자(孔子)
나는 나면서부터 안 자가 아니요,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추구한 사람일 뿐이다. -공자(孔子)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행동하는 일이 있는가?
나는 이런 일이 없다.
많이 듣고서 그 좋은 것을 가려서 따르며 많이 보고서 기억해두는 것,
이것이 앎에 버금간다. -공자(孔子)
뜻을 참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대학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밝게 분변하고, 독실하게 행하여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모르겠거니와 배울진대 능하지 못함이 없어야 하며,
묻지 않으면 모르겠거니와 물을진대 알지 못함이 없어야 하며,
생각하지 않으면 모르겠거니와 생각할진대 얻지 못함이 없어야 하며,
분변하지 않으면 모르겠거니와 분변할진대 밝지 못함이 없어야 하며,
행하지 않으면 모르겠거니와 행할진대 독실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남이 한 번 해서 그것에 능하다면 자기는 백 번 할 것이며,
남이 열 번 해서 그것에 능하다면 자기는 천 번 할 것이다. -중용
학문이라는 것은 안에서 찾는 것이다.
안에서 찾지 않고 밖에서 찾는 것은 성인의 학문이 아니다. -정자(程子)
군자에게는 공부보다 더 자기를 향상시키는 방법은 없고,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는 것보다 더 자신을 지체시키는 건 없다.
또 스스로 만족하는 것보다 더 큰 잘못이 없고, 자포자기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게 없다. -정자(程子)
장인(匠人)이 물건을 만드는 건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물건을 만들어도 쓸모가 없다면 장인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문을 해서 쓸모가 없다면 학문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정자(程子)
암기 위주의 공부와 박식(博識)을 추구하는 공부는,
물건을 갖고 노는 것과 같아 본심(本心)을 잃게 만든다. -정자(程子)
배움이 크게 이롭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어서다. -장자(張子)
학문하는 것은 비유컨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모름지기 먼저 몸체를 세우고, 그 다음 속으로 들어가 벽을 만들어 견고하게 해야 한다.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집을 크게 지을 줄을 모르고 조그만 방이나 지으려 하기 때문에 일을 이루지 못한다. -주자(朱子)
산만한 마음을 수습하는 것이 공부하는 데 긴요하다. -주자(朱子)
스승과 벗에 의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주자(朱子)
공부하는 자는 모름지기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이요,
얻는 것을 계산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주자(朱子)
앎은 실천의 시작이요, 실천은 앎의 완성이다.
앎과 실천은 둘로 나눌 수 없다. -왕양명(王陽明)
근세에 아이를 가르치는 자들은 날이면 날마다 아이들에게 자구를 익히라.
다그치고 품행을 방정히 하라고 요구하지만 아이들을 예(禮)에 의거하여 지도하는 법을 모른다.
또 아이들이 총명하기를 바라지만 아이들을 착하게 키우는 법을 모른다.
그리하여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때리고 벌을 주기를 죄인 다루듯이 한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를 감옥으로 생각하여 들어가려 하지 않으며,
스승을 원수처럼 여겨 보려고 하지 않는다. -왕양명(王陽明)
학문은 깨우쳐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깨우쳐주는 것은 스스로 깨닫는 것보다는 못하다.
스스로 깨닫는 것은 일당백(一當百)의 공부가 된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리 깨우쳐주어도 잘 안된다. -왕양명(王陽明)
어디 간들 도(道) 아닌 것이 없으며, 어디 간들 공부 아닌 것이 없다. -왕양명(王陽明)
내가 젊었을 때 학문에 뜻을 두어 낮에는 쉬지 않고
밤에는 자지 않고 공부하다가 마침내 고질병을 얻어 폐인을 면하지 못하였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자신의 기력을 헤아려서 자야할 때는 자고 일어나야 할 때는 일어나며,
때와 곳에 따라 자신의 심신을 살펴서 마음을 함부로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찌 꼭 나처럼 하여 병이 나게 할 것인가. -이황(李滉)
도(道)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아니하나니, 공부하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 -서경덕(徐敬德)
초학자(初學者)의 공부란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며 어른에게 공손하고 아이에게 자애롭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일에는 힘쓰지 않고 갑자기 심오한 성리를 연구하고자 한다면
이는 사람의 일을 통해 하늘의 이치를 탐구하는 게 아니니, 필경 마음에 참되이 얻는 바가 없을 것이다.
이 점은 깊이 경계해야 한다. -조식(曺植)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 -율곡 이이(栗谷 李珥)
공부라는 것은 일상생활과 일 속에 있다.
평소에 행동을 공손히 하고 일을 공경히 하며 남을 진실되게 대하는 것,
이것이 곧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것은 이 이치를 밝히고자 해서이다. -율곡 이이(栗谷 李珥)
자신의 덕을 날마다 새롭게 하려면 모름지기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하고,
스승을 만나려면 모름지기 묻기를 좋아해야 한다. 묻기를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덕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근본이다.
날마다 새롭게 되는 공부는, 오늘 묻기를 좋아하고 내일 묻기를 좋아하여 평생토록 부지런히 노력하여
자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데 있다. -이익(李瀷)
큰 의심이 없는 자는 큰 깨달음이 없다.
의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얼버무리며 미봉하는 것보다는 자세히 물어 분변하는 게 나으며,
면전에서 아첨하며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다 밝힌 후 서로 합치점을 찾는 게 낫다. -이익(李瀷)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게 없다.
모르는 게 있으면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라도 물어야 옳다.
하인이라 할지라도 나보다 한 글자를 더 안다면 그에게 배워야 한다.
자기가 남보다 못한 것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평생 고루하고 무식한 데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박지원(朴趾源)
선비가 독서를 하면 그 은택(恩澤)이 천하에 미치고 그 공덕(公德)이 만세에까지 전해진다. -박지원(朴趾源)
학문은 천하의 공변된 것이다.
참으로 그 말이 도(道)에 어긋난다면 비록 대인 군자에게서 나온 말이라 할지라도 믿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대인 군자보다 못한 사람임에랴.
참으로 그 말이 이치에 맞다면 비록 비천한 사람이나 용렬한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라 할지라도
의당 드러내주어야 하겠거늘, 하물며 그보다 더 나은 사람임에랴.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하늘이 총명함을 주는 것은 귀천(貴賤), 상하(上下), 남북(南北)을 가리지 않으니,
타고 난 재능을 확충하여 맹렬하게 정신을 다하면 9999분(分)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나머지 1분의 공부는 이루기가 몹시 어려우니 노력해야 마땅하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가르침이 행해지지 않는 데에는 네 가지 까닭이 있다.
배움의 길은 발견했어도 제멋대로 욕심을 부려 배우는 차례를 따르지 않는 것이 그 하나요,
배움으로 들어가는 문을 찾지 못해 마음과 힘만을 헛되이 낭비하는 것이 그 둘이며,
마음이 차분히 안정되지 못해 이치를 궁구하지 못하는 것이 그 셋이며,
아직 방향도 모르는 주제에 스스로 잘 안다고 여기는 것이 그 넷이다.
가르침을 방해하는 것에도 네 가지가 있다.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노래와 여색과 잡기이다.
그 다음으로는 부귀와 영달이며, 그 다음으로는 문장과 기예(技藝)이다.
끝으로, 무리를 지어 학문을 하면서 남을 이기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행태를 들 수 있다.
이것들 때문에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이 존재하기 어렵다. -혜강 최한기(惠崗 崔漢綺)
선인들의 공부법(1) 저자: 박희병 편역
출판사: (주)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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