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ome>커뮤니티>예화우화모음 |
추천 나와 선생님
페이지 정보

본문
내가 계명대 철학과에 입학한 것은 1962년이었다.
그때 나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보다 어떤 대학시절을 보냈느냐가 문제일 것이라고 판단해
알찬 대학시절을 보내게 되면 훗날 후회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서관을 잘 이용하고, 과목도 철학과에만 국한되지 않고
각 과의 교수님들로부터 골고루 지도받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절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역사 교육 심리 음악 등
여러 교수님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지도받았던 것이
지금의 나의 정신세계를 이루는 데 밑받침이 되고 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간 지 일년이 지나 미국에서 갓 학업을 마친 젊은 교수님이 부임하셨다.
지금은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로 계시는 소흥렬 교수였다.
나는 소흥렬 교수님으로부터 커다란 인격적 영향을 받았다.
내가 그 시절에 소흥렬 교수를 만나지 못하였더라면
오늘의 나의 위치에 이를 수 있었을까 가끔 생각할 때가 있다.
소흥렬 교수로부터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사고하는 방식」과 「철학함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리고 어떤 권위와 고정관념이나 타인의 평가에 구애됨이 없이 꿋꿋이 자기 생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자세였다.
그때 우리 철학과 교실에서는 한때 소흥렬 교수님을 실력없는 교수라고 빈축하던 때가 있었다.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가르치려 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말을 시켜 놓고 마냥 듣기만 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그렇다는 엉뚱한 얘기까지 있었다.
그러나 한두 학기가 지나고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면서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다른 학문도 그렇지만 특히 철학은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스스로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중요하고
또 스스로 생각한 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며 그렇게 표현한 대로 살아가는 삶이 중요함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때로는 너무 많이 배운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배우기만 하고 그렇게 살아가지를 못할 때 그 배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소 교수는 우리들에게 이 점을 분명히 해주었다.
그 분은 무엇보다 교실에서 무엇을 배우려는 데 급급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런 것은 책에 다 나와 있으니 스스로 읽으면 되는 것이고,
철학교실에서 배워야 할 것은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하는 사고방식의 문제,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 하는 논리적 표현의 문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삶의 본질의 문제라고 일러주었다.
어떤 시간에는 그날 발간된 일간신문들의 사설 4~5편을 두고
그 논리 전개와 개념 전달의 타당성 등을 분석해 학생 자신들의 글로 다시 쓰게 했다.
그리고 어떤 논리학 시험에는 장기를 둘 줄 모르는 사람에게 장기를 가르치는 글을 쓰라는 문제를 출제했다.
그렇게 훈련받은 덕분으로 나는 바르게 생각하기, 논리적으로 말하기 그리고 글쓰기의 기본을 다질 수 있었다.
그렇게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합리적인 사고와 상상력과 창조력을 길러주는 스승이 얼마나 아쉬운 시대인가!
그래서 나는 지금껏 소흥렬 교수님을 내 사부로 마음 깊이 모시고 살아가고 있다.
김진홍 목사
그때 나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보다 어떤 대학시절을 보냈느냐가 문제일 것이라고 판단해
알찬 대학시절을 보내게 되면 훗날 후회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서관을 잘 이용하고, 과목도 철학과에만 국한되지 않고
각 과의 교수님들로부터 골고루 지도받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절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역사 교육 심리 음악 등
여러 교수님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지도받았던 것이
지금의 나의 정신세계를 이루는 데 밑받침이 되고 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간 지 일년이 지나 미국에서 갓 학업을 마친 젊은 교수님이 부임하셨다.
지금은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로 계시는 소흥렬 교수였다.
나는 소흥렬 교수님으로부터 커다란 인격적 영향을 받았다.
내가 그 시절에 소흥렬 교수를 만나지 못하였더라면
오늘의 나의 위치에 이를 수 있었을까 가끔 생각할 때가 있다.
소흥렬 교수로부터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사고하는 방식」과 「철학함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리고 어떤 권위와 고정관념이나 타인의 평가에 구애됨이 없이 꿋꿋이 자기 생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자세였다.
그때 우리 철학과 교실에서는 한때 소흥렬 교수님을 실력없는 교수라고 빈축하던 때가 있었다.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가르치려 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말을 시켜 놓고 마냥 듣기만 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그렇다는 엉뚱한 얘기까지 있었다.
그러나 한두 학기가 지나고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면서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다른 학문도 그렇지만 특히 철학은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스스로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중요하고
또 스스로 생각한 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며 그렇게 표현한 대로 살아가는 삶이 중요함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때로는 너무 많이 배운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배우기만 하고 그렇게 살아가지를 못할 때 그 배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소 교수는 우리들에게 이 점을 분명히 해주었다.
그 분은 무엇보다 교실에서 무엇을 배우려는 데 급급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런 것은 책에 다 나와 있으니 스스로 읽으면 되는 것이고,
철학교실에서 배워야 할 것은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하는 사고방식의 문제,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 하는 논리적 표현의 문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삶의 본질의 문제라고 일러주었다.
어떤 시간에는 그날 발간된 일간신문들의 사설 4~5편을 두고
그 논리 전개와 개념 전달의 타당성 등을 분석해 학생 자신들의 글로 다시 쓰게 했다.
그리고 어떤 논리학 시험에는 장기를 둘 줄 모르는 사람에게 장기를 가르치는 글을 쓰라는 문제를 출제했다.
그렇게 훈련받은 덕분으로 나는 바르게 생각하기, 논리적으로 말하기 그리고 글쓰기의 기본을 다질 수 있었다.
그렇게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합리적인 사고와 상상력과 창조력을 길러주는 스승이 얼마나 아쉬운 시대인가!
그래서 나는 지금껏 소흥렬 교수님을 내 사부로 마음 깊이 모시고 살아가고 있다.
김진홍 목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