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ome>커뮤니티>예화우화모음 |
추천 왕따와 예수님
페이지 정보

본문
젊은이들 사이에 쓰여지는 은어 중 '왕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많이 당한다'는 뜻인데,
'왕'의 본래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최고' '최대' 란 뜻으로 사용 됩니다.
이런 표현들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젊은이들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기에 관심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래 집단에서 따돌림을 받는다는 것은 그들 세계에서는 치명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왕따' 당하지 않으려고 집단행동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하는 경우도 있고,
'왕따' 당해 고민 끝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시도하는 불행한 경우도 발생합니다.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타의에 의해 소속감과 정체감을 잃는다는 것('왕따'당함)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는 서로 협력하며 상호공존의 틀 속에 살아갑니다.
그 공조의 틀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웃과의 담이 높아지며, 마음의 벽이 두꺼워지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 스스로 '왕따'되도록 애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의적이건 타의적이건 간에 누구를 공동체에서 제외 시켜 버리는 것은 권장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성경을 보건대 '왕따'의 최고 희생자는 주님입니다.
주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제자들로부터도 '왕따'당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 말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교회는 '왕따'라는 말이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자신 한 분의 희생으로 모든 사람들이 연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소외된 계층, 그가 부자든, 가난한 자든, 지위가 있든, 없든,
어른이든, 아이든 상관없이 관심과 사랑을 보이셧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그러한 섬기심을 본받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왕따' 없는 교회가 좋은 교회 이고 왕따 만들지 않는 사람이 복 잇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5:9).
이 말은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많이 당한다'는 뜻인데,
'왕'의 본래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최고' '최대' 란 뜻으로 사용 됩니다.
이런 표현들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젊은이들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기에 관심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래 집단에서 따돌림을 받는다는 것은 그들 세계에서는 치명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왕따' 당하지 않으려고 집단행동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하는 경우도 있고,
'왕따' 당해 고민 끝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시도하는 불행한 경우도 발생합니다.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타의에 의해 소속감과 정체감을 잃는다는 것('왕따'당함)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는 서로 협력하며 상호공존의 틀 속에 살아갑니다.
그 공조의 틀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웃과의 담이 높아지며, 마음의 벽이 두꺼워지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 스스로 '왕따'되도록 애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의적이건 타의적이건 간에 누구를 공동체에서 제외 시켜 버리는 것은 권장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성경을 보건대 '왕따'의 최고 희생자는 주님입니다.
주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제자들로부터도 '왕따'당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 말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교회는 '왕따'라는 말이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자신 한 분의 희생으로 모든 사람들이 연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소외된 계층, 그가 부자든, 가난한 자든, 지위가 있든, 없든,
어른이든, 아이든 상관없이 관심과 사랑을 보이셧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그러한 섬기심을 본받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왕따' 없는 교회가 좋은 교회 이고 왕따 만들지 않는 사람이 복 잇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5: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