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어 추웠던 날씨가 따뜻해지면 겨울 내 움츠렸던 근육의 긴장이 풀리면서 이유없이 몸이 나른해지고 피곤해 집니다. 피로의 원인은 생리적 원인, 병적 원인과 정신적(스트레스) 원인 등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대부분 과로하거나 무리를 했을 때 생기는 피로는 한 잠 자고 나거나 푹 쉬고 나면 대부분 풀리게 됩니다.
이와 같은 피로는 정상적으로 건강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신체적 반응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쉬고 나서도 풀리지 않거나 일을 그다지 많이 하지도 않았는데 온종일 기진맥진해지고 이러한 상태가 수주 이상 지속되는 만성피로는 병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로란 의학적으로 육체적 및 정신적인 과도한 과로를 포함한 다양한 원인들에 의해 정신적 및 육체적 수행능력이 감퇴되어 있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객관적인 정의와는 달리 일상생활에서 '피로하다' 라는 표현은 대단히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근육의 힘이 약해져 있는 쇠약감과 흔히 혼동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피로가 수개월 미만으로 지속되다가 회복하는 것을 급성이라고 표현하며, 이러한 피로는 흔히 급성 전신성 질환의 경과 중 혹은 회복기, 심한 감정적 혼란을 겪은 후, 그리고 정신적 및 육체적인 과도한 과로 등의 분명한 원인들이 선행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수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만성피로'라고 하며, 수개월이 지나도 자연적으로 회복되지 않거나 점점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경우, 그리고 피로감 이외의 다른 전신적 혹은 국소적인 이상 증상들이 병발되는 경우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원인들 이외에 다양한 질병들에 의한 증상이 아닌지 꼭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피로감을 초기의 주증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질병들은 <표1>과 같습니다.
이러한 질환들은 초기에는 피로감이 주증상으로 나타나지만 시간이 경과할수록 질환 그 자체에 의한 국소적인 증상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내분비계통의 질환들은 시간이 경과해도 국소적인 증상들이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흔히 피로감을 느끼게 되면 간기능에 이상이 있지 않은지 궁금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급성 간염의 경우는 당연히 심한 피로감과 쇠약감을 느끼게 되고, 만성간염의 경우 피로감이 주된 증상인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하지만, 간경화증의 경우는 그 경도가 심하지 않다면 전혀 피로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도 있고, 특히 간암의 경우는 동반된 만성간염의 정도가 경미한 경우 전혀 피로감이 없는 경우도 흔합니다.
<표1> 만성피로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질환들 | * 감염질환 - 결핵아급성, 심내막염후천성, 면역결핍증 * 광범위하게 전이된 악성 종양 / 악성 종양에 대한 항암치료 * 신경학적인 질환들 - 중증 근무력증, 다발성 신경염의 초기, 다발성 경화증, 파킨슨씨병, 뇌진탕후 증후군 * 내분비계통의 질환들 - 갑상선중독증, 당뇨병, 부신피질기능저하증, 뇌하수체기능부전증 * 원인이 불명한 질환 - 만성피로증후군 * 결체조직질환 * 울혈성 심부전 * 만성간염 * 심한빈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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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로감에 동반되는 정신신경증 이러한 질환들 이외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흔히 이환되어 있는 질병이 바로 우울증입니다. 물론 우울증의 정도가 심하면 당연히 정신과적인 진료를 받게 되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막연한 피로감과 함께 몸의 여러 군데에 불편감 및 통증을 호소하게 되는 다양한 신체증상들이 같이 나타납니다. 우울증 이외에도 불안신경증, 적응장애 등도 흔히 발견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장애들이 일차적으로 피로를 유발하는 경우 이외에 이미 신체에 있는 유기적인 질병들에 의해 피로가 발생되고 이런 심한 피로감에 의해 이차적으로 불안해지나 우울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로감이 있을 때 단순히 우울한 증상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 피로감의 원인을 파악해야.. 피로는 그 원인이 육체적 및 정신적인 피로와 같은 생리적인 경우에는 적절한 휴식을 취해 달라고 하는 신호이기 때문에 당연히 휴식을 통해 치료해야지 한두가지 약물을 복용해서 조절하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나아가서 질병에 의해 발생되는 만성피로는 해당 질병에 의해 인체의 항상성과 대사과정이 이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경고증상이기 때문에 더욱더 약물을 통해 피로감 만을 없애려 해서는 안됩니다.
결론적으로 피로는 다양한 원인들에 의해서 발생될 수 있는 증상으로 그 정도가 가볍고 일시적인 것으로 피로를 유발한 원인이 분명한 경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거나 신체에 다른 이상한 증상들이 병발되는 경우는 꼭 병원을 찾아서 적절한 진료를 받아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있는 유기적인 질환들에 대한 검사를 필요로 합니다.
항간에는 피로만을 전문적으로 진료한다거나 피로를 고유의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느끼고 있는 피로감이 이러한 대중적인 치료들을 통해 조절될 수 있는 단순한 피로인지, 아니면 심각한 숨겨진 질환의 초기 증상으로 피로가 나타난 것인지에 대한 세심한 진찰이 필요합니다.
검사 없이 단지 피로에 대한 대증적인 치료를 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위험하고, 조기에 진단을 통해 쉽게 완치될 수도 있는 질환을 중증로 키우게 되는 어리석은 행위가 될 수 있음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글 :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박정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