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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파경을 앞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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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안은 한국과 미국의 굳건한 동맹관계를 인정하고 한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하는 등
국제적 대 테러 노력에 기여하고 있는 점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미국의 민의를 대표하는 하원이 '한 · 미동맹 이상 없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이 결의안이 비록 선언적 입장 표명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한 · 미동맹의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가 제기되는 시점에서 이 결의안이 나온 것이어서 우리의 입장에서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한 · 미양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시장경제와 법치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확립이라는 일치된
가치체계를 기본 골격으로 한 · 미 동맹의 버팀목이 돼 왔다.
그러나 일치하는 가치체계에도 불구하고 상충하는 국가이익 때문에 동맹관계에 충돌이 잦아져
한 · 미동맹 관계를 놓고 '파경을 앞둔 부부'라느니 '이런 식으로 가면 10년 내 붕괴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채택된 이 결의안이 한 · 미동맹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리라고 본다.
구 소련 붕괴와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공동의 적'을 전제로 한 전통적 의미의 동맹관계가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관계는 21세기에도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작은 이해관계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보다 차원 높고 미래지향적인 포괄적 동맹관계로
발전시켜 서로가 윈윈 하는 길을 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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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돌이님의 댓글
토돌이 작성일
안세영 유성룡과 이순신
유성룡의 ‘징비록’을 읽어 보면 조선은 참으로 한심한 나라였다.
대한해협에 전운이 깔렸는데도 국방을 소홀히 하다 왜군에 파죽지세로 밀린다.
정작 놀라운 것은 당시 지도층의 혼란상이다. 북상하는 왜군을 토벌하러 간 조선의 장군들은 적의 정세를 알려주는 농민의 목부터 베었다. 유언비어를 퍼뜨려 관군을 동요시킨다는 죄목이었다. 정작 왜군에 패퇴한 관군은 지나가는 의병을 몰살시켰다. 혼란을 틈타 반역을 도모한다는 죄였다.
▷이 정도면 분명 망해야 할 나라인데 조선은 결국 왜군을 몰아냈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나라가 어려울 때 인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영의정까지 지낸 유성룡은 비 내린 진흙땅에 무릎을 꿇고 명나라 장수 이여송 앞에서 질책을 당한다.
군량미 조달이 늦어졌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굴욕을 그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나라를 구하는 데 자신의 개인적 굴욕은 사사로운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명나라 제독 진린은 마음에 안 드는 조선 관리의 목에 새끼를 매고 질질 끌고 다녔다. 진린이 조선함대와 합류하러 남으로 떠나자 조정은 바짝 긴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다른 면모를 발견한다. 진린을 극진히 대접하여 먼 바다까지 영접 나간 것은 물론이고 왜군의 목 오십을 진린에게 상납(!)한다.
▷유성룡과 이순신 장군의 행동은 언뜻 보기에 비굴한 것 같지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숙인 높은 뜻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통신사 부사로 1590년 일본에 간 김성일은 이와 대조적이다. 그는 자신을 내세워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귀국 후 통신사 정사 황윤길과 달리 ‘일본은 침략의도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대 당파에 속하는 황윤길이 전쟁 위협을 너무 강조해 민심이 흉흉해질까 봐 그랬다는 것이다. 나중에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속한 당파의 코드에 충실했다가 나라의 안보에 위험을 초래한 셈이다.
▷위의 대조적인 사례는 자기주장 내세우기와 코드 맞추기에 급급한 오늘날에도 교훈이 크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하다 나라를 다스리게 된 참여정부 인사는 과거보다는 미래로, 동지보다는 국민을 향해 눈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라면 때론 자신의 이념이나 체면은 뒤로 접을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자기와 생각이 같은 사람과 코드를 맞추고 그들과만 통치철학을 공유하려 들기보다는, 유성룡과 이순신 장군처럼 코드가 다른 상대와도 협력하고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